들어가며
언올닷컴 블로그 필진 김강래입니다.
KLO 2025년도 4번 문제인 이차어를 풀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다른 어휘의미론 문제들과는 달리 번역 과제가 따로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번역 과제로 힌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주석에는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언어의 계통 정보나 사용 지역으로 얻을 수 있는 힌트 역시 없어 보입니다. 대신에 단어의 뜻풀이가 하나 있는데요, ‘중천’은 ‘하늘의 한가운데’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천’의 뜻풀이를 잘 기억한 채로, 이차어 문제를 풀어봅시다.
풀이
짝찾기 문제의 해결 순서에 따라, 한국어 자료를 먼저 분석하겠습니다.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것은 아무래도 품사입니다. 조금만 주의깊게 본다면 형용사가 세 가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ㄷ. 눕다는 혼자 동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명사입니다. 이에 따라 한국어 단어들을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 ㄱ. 낮은
- ㄴ. 높은
- ㄹ. 따뜻한
- ㄷ. 눕다
- ㅁ. 땅
- ㅂ. 서쪽
- ㅅ. 중천
- ㅇ. 태양
- ㅈ. 하늘
- ㅊ. 한낮
이때 명사를 유심히 보면 세 가지 형용사를 각각 의미로 가질 수 있을 명사 셋이 보입니다. ㄹ. 따뜻한은 ㅇ. 태양과 의미적으로 유관하고, ㄴ. 높은은 ㅈ. 하늘과 유관해 보입니다. 하늘이 높다면 땅은 어떨까요? ㄱ. 낮은을 ㅁ. 땅에 연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ㄱ. 낮은 – ㅁ. 땅
- ㄴ. 높은 – ㅈ. 하늘
- ㄹ. 따뜻한 – ㅇ. 태양
- ㄷ. 눕다
- ㅂ. 서쪽
- ㅅ. 중천
- ㅊ. 한낮
그런데 이러한 형용사-명사 쌍을 세 가지 알아냈다고 해서 곧바로 짝 찾기를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남은 네 단어를 분석해서, 각 쌍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봅시다. 여기서부터는 한국어 뜻만 갖고 추측하기보단, 이차어 단어 형태를 살피면 좋습니다.
이차어 단어를 형태에 따라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세 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남은 단어 네 개를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 5. kab’ – 6. kab’al
- 7. ka’an – 8. ka’nal
- 9. k’in – 10. k’inal
- 1. chi
- 2. chik’in
- 3. chumukk’in
- 4. chumuk ka’an
상단의 단어쌍을 관찰하면 접미사 -al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7. ka’an이 -al이 붙자 8. ka’nal이 되는 등 사소한 음운 변화가 보이지만, 이 문제에는 번역 과제가 없으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들 쌍은 앞서 한국어 자료에서 발견했던 명사와 형용사를 이은 것과 비슷합니다.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한국어 자료 여섯 가지와 이차어 자료 여섯 가지의 연관성을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해서, 남은 네 가지 자료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게 짝 찾기를 해낼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어와 이차어 자료에서 각각 남은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ㄷ. 눕다
- ㅂ. 서쪽
- ㅅ. 중천
- ㅊ. 한낮
- 1. chi
- 2. chik’in
- 3. chumukk’in
- 4. chumuk ka’an
이들 중 1. chi는 유일하게 단일 어휘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한국어 자료에서 가장 단일어로 나타날 법한 기초적인 개념은 ㄷ. 눕다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 chik’in은 ‘k’in이 누운 곳’일 텐데, 이러한 뜻풀이는 ㅅ. 중천이나 ㅊ. 한낮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ㅂ. 서쪽은 어떤가요?
조금만 고민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서쪽은 ‘태양이 눕는 곳’입니다! 2. chik’in을 ㅂ. 서쪽에 연결하고, k’in이 태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므로 9. k’in을 ㅇ. 태양에, 10. k’inal을 ㄹ. 따뜻한에 연결합시다.
덕분에 우리는 -al의 정체 역시 확정할 수 있습니다. -al을 앞선 단어의 속성을 바탕으로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였던 것입니다.
다시 짝 찾기 과제로 돌아와서, 3. chumukk’in은 k’in이 태양이므로 ㅊ. 한낮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남은 4. chumuk ka’an이 ㅅ. 중천에 연결되는데, 우리는 앞서 중천의 뜻풀이가 ‘하늘의 한가운데’였음을 보았습니다. 아하, chumuk은 ‘한가운데’라는 의미이고, chumukk’in은 ‘태양이 한가운데(인 상황)’라서 ‘한낮’이라는 뜻이 된 것이군요! 그렇다면 chumuk ka’an이 ‘하늘의 한가운데’이니, 7. ka’an이 ㅈ. 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 ka’anl을 ㄴ. 높은에 자연스럽게 연결해줍시다.
이제 남은 단어는 단 둘입니다. 이차어 자료에서는 5. kab’과 6. kab’al이 남았고, 한국어 자료에서는 ㄱ. 낮은과 ㅁ. 땅이 남았습니다. -al이 형용사를 만드는 접사이므로, 5와 ㅁ을 연결하고, 6과 ㄱ을 연결합시다.
문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치며
이차어 문제는 KLO에 처음으로 출제된 어휘의미론 짝 찾기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기점으로 이후 한국 대회에서도 어휘의미론 짝 찾기가 출제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KLO에서 공개한 이번 2025 대회의 통계 자료를 확인하면 유독 이차어의 그래프가 인상적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평균 점수도 1번부터 4번까지의 15점 문제들 중 3.44점으로 가장 낮고, 참가자 상당수의 학생이 고전했는지 그래프의 수염상자도 아래에 몰려 있습니다. 이 문제에서 온전히 15점을 받았다면, 수상에도 역시나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어휘의미론 문제를 푸는 참가자는 국내외 언어학 올림피아드에서 큰 경쟁력을 갖습니다. 이번 이차어 해설을 보며 어휘의미론 문제를 푸는 감각을 익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KLO 2025 4번 이차어 문제의 풀이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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